강화의병장 이능권의 나라사랑

                                               신 봉 기
                            강화투데이 발행인

강화군은 현재 단순히 지역구분상 하나의 군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 나라의 역사속의 강화도는 예로부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으며, 여러 역사적인 사건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곳이었다. 또한, 그러한 장소인 만큼 나라사랑이 넘치는 곳이기도 했다.


오랜 역사 한 가운데 어찌보면 외딴 곳으로 비추어진 강화에는 유배지로도 손꼽혔지만, 유배 온 이들의 면면을 살피면 그들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의 뿌리가 강화에 스민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번 기고에서는 1907년 고종이 당시 개신교의 지원을 받아 비밀리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 하기 위한 특사로 정사 이상설, 부사 이준, 통역관 이위종과 이들을 도울 호머 헐버트를 파견하였던 헤이그 밀사의 호위를 하였던 강화의 의병장 이능권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지금은 강화의 낭만여행의 핫플레이스중 하나인 더리미미술관이 있는 강화도 갑곶리 더리미 벌판 자리는 독립운동의 첫 불씨가 의병전투를 비롯해 항일투쟁이 치열했던 곳이다.


1907년 8월부터 강화 의병대장 이능권, 연기우을 필두로 삼백여 명의 의병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고귀한 목숨을 잃은 곳. 일본 정규부대와 맞 붙어 싸운 더리미 전투장에서 일본군이 강화 해협으로 상륙해서 많은 희생을 치렀고 이외에도 3.1 만세 시위를 벌였던 강화읍사무소가 있는 자리나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선두교회 자리, 족실방죽과 전등사 등 서울의 관문 강화에는 많은 독립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때 고종은 을사늑약에는 옥새가 찍히지 않아 무효란 것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특사를 헤이 그까지 보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육지나 바다를 철통같이 감시하던 일본군의 감시를 뚫고 특사가 안전하게 헤이그로 향할 수 있도록 지켜줄 유능한 호위 무사가 필요했다.


여기에 선발된 사람이 강화의병장 이능권(1864~ 1909)이었다. 그는 고종의 밀명을 받들어 특사를 무사히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보내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본국으로 귀국했지만, 특사들이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는 소식에 울분이 쌓였다. 게다가 이를 빌미로 고종까지 쫓겨나게 되자 고향인 강화도 에서 의병을 일으키게 됐고 이능권이 의병의 기치를 들었다는 소식에 몰려드는 의병이 300여명에 달했다.


이능권은 의병들을 훈련시킨 후 신식 무기로 무장해 강화도에서 일본군과 여러 차례에 접전을 걸치면서 일본군에 상당한 타격을 가했다. 이에 일제는 일본군과 순사대 등 400여 명이 주둔하면서 매일같이 의병 토벌에 나섰고 이에 이능권은 강화도를 나와 경기도 부평을 거쳐 서울에 머무르다가 순사대에 의해 12월 13일에 중부동의 윤창하 집에서 체포되었고 1909년 9월 27일 경성공 소원에서 교수형이 확정되어 11월 8일 순국하였지만, 그가 쏘아 올린 항일운동의 불씨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가는 시발 점이 되었던 것이다.


의병이었기에 그 이름마저 묻힐뻔 했었으나, 인천대 인천학연 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의 노력으로 발굴한 강화의병 관련 일본 기밀보고서를 통해 김용기, 이능권, 지홍윤 의병장이 이끌었던 의병부대 소속 의병장과 의병을 다수 찾아 내어 그 이름이 남게 되었다. 강화의병뿐 아니라 3·1독립만세의거, 국내외 반일투쟁 선두에 섰던 강화 출신 독립유공자를 발굴한다면 가히 일제에 항거했던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획을 그었음이 확실 하다.


이처럼 진정한 애국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소중하고도 고귀한 피를 흘려가며 나라를 위해 본보기가 되었던 인물들의 넋이 살아 숨쉬는 곳이 이 곳 강화다. 의병장 이능권이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한 나라사랑은 무엇이냐고. 이름을 날리는 일도, 누군가를 선동하는 것도 아닌, 이토록 연일 시끄러운 소식으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한 요즘, 진정한 나라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되뇌이며 국민을 위한 국익의 길은 무엇인가를 우리 강화의 인물들의 발자취를 통해 돌아봄직하지 않겠는가?라고 말이다. 깊이 생각해 볼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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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벽하 기자 다른기사보기